작성일 : 25-06-13 15:54
[3] 시리아-팔레스틴, 성서 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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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34  

C.미래의 모습(shape)

우리는 이미 비유를 사용해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이 최근에 그의 시대가 도래한 위엄 있는 부모의 아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젊은 성인의(adult) 미래는 어떨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질문에 전적으로 대답하기 위해 이렇게 제안한다.

먼저 외적 환경, 즉 중동의 상황을 살펴보자.

1.외국 현장 작업

미국의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이-진지한 학문적 작업으로서, 원래 연구와 혁신된 가르침에 공헌하는-중동에서 가능한 틀(framework)에 의존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많은 상황이 있고 우리가 통제하지 못할 상황이 있음도 똑같이 명백하다.

미국 고고학자들이 과거 중동의 모든 고고학 발전을 선도해 왔다면 오늘날 그들은 경직되어 있고 많은 나라로부터 배척까지 받고 있다. 그래서 터키, 시리아, 이라크에서 미국인 현장 조사는 거의 없고 레바논, 사우디 아라비아, 걸프 국가, 이란에는 하나도 없고 단지 이스라엘, 요르단, 시프러스에서만 미국인의 발굴과 연구가 활발할 뿐이다. 이들 후자의 세 국가들에서조차 미국의 역할은 그 분야를 주도하려는 그 국가들의 학자들에 비해 현저히 축소되고 있다. 이들 국가의 학자들은 강력한 우선권을 누리고 있다:발굴현장의 지속적인 접근과 선택; 국가적 규모의 작업에 대해 우선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자유, 정부 부처, 대학 박물관 같은 국가기관의 장기적인 지원, 다양한 연구 장려책, 거의 발표되지 않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 그리고 종교 고고학을 통해 국가 의식과 정체성을 초래하는 점점 계몽되는 대중들, 수백의 안전하고 전문적인 지위, 그 국가들의 학자들은 계속적으로 가장 훌륭하고 외국의 방법을 채용하고 거기에 자신들의 것을 더함으로써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데, 그들은 단지 적절한 기금과 인력이 부족해 보인다. 물론 이런 느슨함의 많은 부분이 외국과의 합작 사업에 의해 채워지고 있다. 예를 들어 소위 합작 계획이라는 명목의 대부분의 예산이 미국에서 나온다. 그리고 거의 모든 일꾼들은 미국 학생 자원 봉사자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협정은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들은 고고학의 탐험에 아마추어를 제공하지만 독립된 학파로서 미국 고고학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수의 전문가를 찾아내는데 도움이 되거나 훈련되지는 않은 것 같다. 식민지 이후시기에 외국 발굴자의 축소된 역할은 필연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 학문의 미래에 나쁜 징조이다. 우리가 고안한 게임에 구경꾼으로 머물러 버릴 것 같은 두려움! 더 심각한 것은 실제로 원초적(즉 현장) 연구를 수행할 능력을 상실할 가능성이다. 게다가 국수주의의 위험에서 우리는 중동의 고고학에 유일하고 합법적인 미국의 이익이 있음을 주장해야 한다. 우리의 지적, 정신적 뿌리 역시 거기에 있다. 미국 학자가 우리 최고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귀찮은 국가주의 학자들과의 점증하는 경쟁이 우선적이지는 않지만 결국 그럴 것이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의 고고학 발전에도 성원을 보내야 하고 경쟁을 즐겨야 한다. 보다 더 큰 관심은 중동이 발전 지역이라는 사실에 의해 주어진 몇 가지 조건이다. 첫째는, 급격한 현대화와 지역 전체의 경제 성장이다. 이것은 지도로 그려지기 전에 수천년 된 고고학적 현장이 파괴된다는 것 뿐 아니라 인양과 발굴 작업에 천문학적 비용을 들게 할 것이다. 둘째는, 폭력적인 반미 감정과 함께 종교적 열광주의와 함께 결합된 이 지역의 국가주의와 극단주의의 태동이다. 아직도 장기적인 계획이 수행되고 계획되어지는 곳에서도 고고학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주의의 발전의 부정적인 측면 중 하나는 민족적 라이벌을 조장하거나 단순히 국가 정책에 봉사하게 하도록 고고학을 오용시키는 불행한 분위기를 쉽게 만든다는 것이다(이런 경향은 이미 아랍 세계에서 ‘범-회교 고고학’에 높은 관심을 보일 때 인지되었고 웨스트뱅크, 유대, 사마리아 같은 현대 이스라엘 거주 지역에서 고대 이스라엘 정착 흔적을 찾는데 높은 관심을 갖는 것에서 인식되었다). 더욱 더 불길한 것은 고고학의 몇 가지 극단적인 요소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이다. 일부 아랍에서의 이슬람 형제애와 이스라엘의 초정통주의는 현장에서 고고학자를 애먹이고 기념물을 파괴하고 발굴을 금지하도록 공작한다. 만약 지역 고고학자가 전통적, 종교적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분노를 초래했다면 외국 고고학자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합리적이고 문명화 된 지도자들이 득세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긴 하지만 오늘날의 중동을 쉽게 낙관할 수는 없다. 가까운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적어도 중동은 보다 더 정치화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이 미국 고고학의 전적인 황폐화는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이스라엘, 요르단, 시프러스 같은 몇몇 국가에서 필요로 하고 환영받고 있다.

동양 연구의 미국 학자들은 넘쳐 나고 있고, 그래서 40개 이상의 미국인 현장 프로젝트를 제휴하듯이 이들 세 나라에는 고고학적 연구 기관들이 확장되고 있다. 이들 세 나라는 위에서 언급한 위협적인 발전을 반대하는 개화된 고고학과와 아주 유능한 사람들이 있어 우리를 편안하게 하지만 우리는 물어야 한다: 미래에 미국의 역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선권이 우리로부터 토착의 국가주의 학자들에게로 넘어가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 몇 가지가 남아 있다. 첫째, 이국 고고학자들은 엄격한 정치적 중립의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개인적으로 따뜻하고 감정적으로 연결됨을 느끼는 환영받아야 할 우리의 포위되어 있는 지역의 친구들을 실망시키더라도. 우리는 ‘비이익적 학자’로 남아 있는 것이 최선이다. 최근 미국 고고학에서 보다 세속적인 학자의 출현은 고고학을 위험하게 했던 감정적이고 종교적인 동기들을 거부하도록 도울 것이다(초기 많은 고고학자들의 전형적인 개신교 정신은 이스라엘에서의 연구를 어렵게 하고 아랍 세계에서 어떤 형태의 성경도 금지하게 했다. cf. Dever). 둘째로,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우리의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 그 국가의 학자들의 노력을 되풀이하기보다는 보완적인 연구를 발전시켜야 한다.-특별히 그들이 관심을 갖지 않거나 소홀히 대하는 유적, 시기, 문제에. 이것은 주로 이야기되는 장기적이고 대규모의 발굴이 줄어들고 경험적인 방법, 지역 조사, 작은 한 시기의 유적 연구와 특정 문제 해결의 고고학은 늘어날 것임을 의미한다. 마지막 전략은 거의 없는 비문자적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과 요르단에서 보여지는 협력과 연합 계획에 좀 더 참여하는 것이다. 이들 계획들은 조직이 많은 문제가 있고 미국인 파트너에게 제한된 기회만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미래에도 여전히 필요하고 매력적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미국인의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은 이 분야에 남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는 연구비 지원이 상대적으로 더 큰 주제들에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이론적 재형성을 요구한다.-자료의 창조적인 종합과 통합; 과거와 현재 계속되는 현장 작업의 출판, 학문적, 대중적 지원이라는 미국 고고학을 건강하게 하려는 점증되는 시도.

2.고국에서의 학문(The Discipline at Home)

미래 미국의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에 영향을 끼칠 내적 요인들은 다루기가 덜 어려워 보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것들은 더 강력해질 것이다. 우선 실제적인 면을 본 뒤 이론적 면들을 살펴보자.

a.몇 가지 실제적인 고려들

먼저 우리가 과거 20년 혹은 풋내기 학문으로서 그것을 확립시키기 위해 애를 썼던 그 분야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명백하다. 즉 성서적 고고학이 미국에서 누려 왔던 상당한 대중적 지원을 유지하고 획득하려면,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은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위상으로 마지막 변형을 성공적으로 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전체 사업은 붕괴될 것이다. 왜냐하면 고고학은 이제 너무 복잡하고 현학적이며 아마추어의 기반에서 살아남기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지원은 없어서는 안될 것이지만 현장 작업의 전업(full-time)전문가들의 연구와 가르침에서 역시 본질적인 것이다. 직업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작은 교회와 관련된 학교들, 종교학과 대학이나 세미너리에 많은 파트타임 직업을 고용(유지)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학의 고대근동학과, 인류학과 등에서 우리가 이미 해 왔던 조그만 성과들을 보충하기 위한 새로운 직업(국면)의 창출을 의미한다. 이미 상대적으로 작지만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으로 특화된 번영하는 대학원 프로그램은 토론토, 시카고, 하버드, 펜실바니아, 듀크, 아리조나 대학에 있다. 상당한 현장 경험과 높은 수준의 최소한 40명의 Ph. D학생들이 이들 프로그램에서 훈련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어떻게 자리잡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뿐이다. 명백히 고고학의 미래는 모든 혁명적인 사상을 표방하는 이들 떠오르는 세대의 운명에 거의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도 묘사했지만 그들의 직업(경력)은 위기에 처해 있다.

고용(참여)에 대해 덧붙이자면 우리가 우리 연구의 기본 형태인 현장 작업과 출판을 위한 기금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것의 신용에 대해 ‘더 새로운 고고학’은 최근, 상당수 공적, 사적 기금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성을 위한 국립 기금(National Endowment for Humanities)같은 세속적인 원천으로부터 지속적인 보조를 얻고 있다. 고고학이 종교와 신학적 관심에 덜 직접적으로 관련됨으로써 그러한 기금을 유지하고 증대시키는 것은 절대적으로 본질적이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더 값비싼 것이다. 예비 현장 보고를 장려하는 출판의 필요성은 기금뿐 아니라 다른 기본적인 문제에도 관련되어 있다. 전체 규모, 통합된 최종 보고서: 다양한 기간과 문제들에 대해 종합적으로 통찰하는 것; 그리고 특별히 성서학과 고대 근동 연구(ANE studies), 일반적 고고학, 인류학 그 밖의 다른 학문에 대한 최근 발견과 관련된 해석학적 방법. 여기서 우리는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우리의 고고학 분과에서 진보를 계속하지 못하는 것과 우리가 결정적이라고 간주하는 자료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거의 흠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에 소홀했고 미숙했다.

물론 현대 고고학의 복합성(complexity)과 비용은 출판을 아주 더 어렵게 만들어 왔다. 그러나 지금껏 보다 더 긴급한 것은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이 참된 학문적인 과목이 되기를 열망하느냐의 여부이다. 마지막으로 꼭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필요, 학습된 단체들의 강화와 전문적인 조직들에 대해 근본적인 것일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 이것은 우선, 1900년 이래로 성서학의 많은 측면과 함께 고대 근동 언어학, 역사, 고고학 분야에서 평범한 사람과 학자들의 흥미에 효과적으로 봉사해 온 동양연구미국연구소(ASOR)이다. ASOR의 국내 연구소와 중동에서의 많은 현장 계획은 이미 언급했었다. 고고학의 전적인 발전에 대한 강력한 장애물과 그것의 전통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에서 ASOR이 단지 신고고학의 강요에 적응하는 것 뿐 아니라 그것을 촉진해 왔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날의 ASOR은 아직도, 쇠퇴한 성서적 연결을 유지하고 있지만 떠오르는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 학문을 위한 기본적인 학문적 대변인 역할을 해 왔다. 그것은 중동에서의 대다수 미국 현장 계획들의 보증이 되었고, 그것의(ASOR) 연례 회의와 많은 출판물은 결과 제공을 위한 주된 토론(비판,forum)으로 공헌했다. 게다가 ASOR의 해외연구소는 오랫동안 의미 있는 연구 센터로서 뿐만 아니라 장기 이사(director)였던 소장 고고학자들의 경력에 디딤돌이 되어 왔었다. 그러나 ASOR은 이제 아주 중대한 다른 영역에서, 즉 더 넓은 차원에서 고고학의 장려와 미국 대중교육에서 성공적이지 못했다. ASOR은 최근에야 자신의 청중을 위해 성서적 범위를 넘어서는 곳에 도달했다. 또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의 연합된 지원을 위한 효과적인 로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ASOR은 아마도 미국만이 광범위한 대중적 공감과 지원과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새롭고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견해를 창조해야 하는 도전에 이미 직면해 있다. 만약 우리가 민주 사회에서 연구 기관으로 사상의 혼돈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과 성서 고고학의 주류를 긴급히 필요로 한다.

우리의 모토는: 수도원 밖으로, 학문 속으로, 그리고 심지어 시장에서조차도 가 되어야 할 것이다.

b.이론적 고려들

여기서 다시 우리는 이론이 학문 연마를 우선적으로 자극한다는 의미에서 필연적으로 우선이 아닌 반면 한 번 시작된 성장과 자극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논의할 것이다. 그러나 성서 고고학과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은 항상 이론과 방법의 중요성을 각성하는데 불충분했었다. 그래서 1970년대 이전엔 미국 고고학자들의 풍부하고 생생한 문헌과 비교되어, 놀랍게도 우리 분야의 이론과 방법에 대한 도서 목록이 실제로 없었으며 이제서도 비평적 토론은 거의 없다. 이러한 부족은 변화의 힘이 대체로 고고학의 다른 분과에서 유래되었던 사실과 마찬가지로 최근까지 우리 과목의 쫀쫀하고(parochial) 뒤떨어진 성질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실용주의의 특징(pragmatism)은 방법(method)이 최종적으로 문헌을 조사하기 시작할 때, 주로 토론이 현장 기술(technique) 즉 어떻게 반론할 것인가에 한정된다는 사실에서 잘 보여진다. 그래서 다양한 층위학적 방법과 기록 방법이 1970년대에 뜨겁게 논의되어졌다. 아직도 우리들은 고고학에서 근본적인 지적이슈, 즉 이론이 우리 분과에서 아직 진지하게 제기되지 않았음을 논쟁할 것이다.

연구를 위해 선택되어진 질문들이 필연적으로 조사 양식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방법이 이론이다’라는 사실이 분명히 간과되어졌다. 그래서 우리의 고발은 이론적 틀이 부족한 성서 고고학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가정들이다: ⑴고고학이 아니라 성서 역사와 신학에서 이슈를 끌어낸다. ⑵거의 명확하지 않으며 더구나 비평적으로 발전한 것도 아닌 가정.

예를 들어, 족장들의 역사성을 논평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성서 연구에서는 실속 있는 조사가 되겠지만 적절한 고고학 이론을 거의 규정할 수 없을 것이고 더구나 연구 전략은 택도 없다. 역설적이게도 신학적 해석학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같은 성서 고고학자 중 몇몇-G. E. Wright같은 이는 결코 고고학적 해석학을 양식화(formulate)하려 하지 않는다. Albright는 그의 성숙한 통합적 연구와 특히 다양한 역사철학에 대한 인생 말년의 편견 없는 몇몇 논문(Essay)들과 그의 사고에 대한 그들의 충격에서 closest했다.

우리는 해석적인 이슈가 거부되어야 한다고 제안하지 않는다. 반대로 성서 고고학과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의 거의 모든 발견에 대한 해석이 많은 지성들 사이에서 이들 과목을 특징지어 온 생생하고 격렬한 논쟁으로 끝없이 논의되어져 왔다. 그러나 가장 해결되지 않는 논쟁은 대체로 학문이 참된 고고학적 인식론을 개발하지 않았던 데 기인한다. 즉 기본적인 해석 방법에 대한 공감대가 없었다. ‘역사적 고고학’조차도 이 접근 방법엔 불충분했다. 증거는 선택적으로 수집되어졌고 결론은 끄집어내어지고 논쟁되었다. 또 해석은 발전했다-역사를 언급하는 모든 기초에 대해. 그러나 역사라는 것과 현대 사료 편찬 방법은 거의 질문되지 않는 물음인 고고학적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역사가 의미하는 것을 거의 명기하지 못했다. 그리고 고고학은 최소한의 정의도 내리지 못했다. 물론 우리가 의미하는 인식론에 의하면 학문이란 단어가 없는 그것들의 가장 근본적인 수준-지식의 이론-은 연구 분야의 비극적인 오기(誤記)이다. 적절한 고고학적 인식론은 다른 것들 사이에서 이것들 같이 명백한 질문들에 직면할 것이다. 자연적이고, 문화적인, 유적 형성 과정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상황은 고고학적 발견의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가? 고고학적 자료들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고고학적 사유에 있어서 유비(analogy)의 역할은 무엇인가? 독특한 고고학적 논리는 있는가? 우리는 문화 유물로부터의 반응(behavior)을 어떻게 추정할 수 있나? 무엇이 문화와 문화 변화를 결정하는가? 목록은 확장될 수 있지만 요점은 명확하다: 우리가 오랫동안 진지하게 그러한 기본적 질문과 씨름해 오는 동안 고고학은 보물 사냥보다 조금 더 남아 있는 것 같다. 우연한 발굴의 선별, 일관성 없는 목적. 의미 있어야 할 지적인 틀에 대한 언급이 없는 난잡한 사실들. 그러나 인식론은 해석적인 수준에서보다는 오히려 근본적인 수준에서 작용한다. 인식론은 효과적으로 우리가 얻은 자료의 질을 결정한다. 거의 모든 연구에서 특별히 고고학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항상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잇고 생각하고 있던, 그리고 우리가 더 찾아내려 했던 것, 또 우리가 연구를 수행하려고 제안한 방법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그것을 다른 방법에 적용시키면, 고고학에서의 사실(fact)들이란 거의 없다. 유물들은, 그것들이 상황(context)속에서 적절히 발굴되어지고 적절한 질문과 연관되어 해석되어질 때, 그리고 출판되어질 때에야 자료(data)가 될 수 있다. 고고학자가 백지 상태의 마음으로 발굴 유적에 접근하는 객관적인 과학자라는 생각은 아주 단순하고 위험한 생각이다. 우리는 보려고 신경 쓰는 것만 먼지 속에서 본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땅바깥으로 끄집어낸 증거들을 파괴한다. 결국 현장 고고학은 반복적일 수 없는 경험이다. 예를 들어, 초기 세대들은 항상 동물 뼈를 버렸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옛날 사람들이 먹었던 것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그래서 생활양식을 연구할 유일한 기회가 돌이킬 수 없이 상실되어졌다, 필수적인 테이타가 수집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므로 자료(data)의 새로운 질문에 대해 묻기를 좋아하는 현재 세대는 더 나은 자료 세트를 얻을 때까지 적절한 가설을 형성할 수 없었다. 고고학은 엄격하게 조직적이고 축적된 이론을 세우고, 이론을 시험함으로써만 인간적이거나 과학적인 학습의 분과로서 발전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인식론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그 점은 국내에서 한 두 가지 예에 의해 활발하게 되었다. 우수한 이스라엘 역사가와 고고학자 베냐민 마자르에 의해 쓰려진 팔레스틴의 중기 청동기 시대에 대한 초기 논문은 이제 아주 고전으로 간주된다. 그것은 그 당신 알려 졌던 것의 찬란한 종합이다. 그것은 우리가 정치적 역사로 구분되었던 것에 대해 거의 모든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자들의 지향점으로 주어졌다. 조사되어진 주요 자료들은 유적 현장의 층위학, 축성법, 금석학적 유물, 동부 지중해 연안의 국제 관계들과 민족운동과 관계가 있다. 이 초점은 당시의 위대한 사상과 개인, 기관에 대한 것 즉, 공적 사건과 정치적 역사에 관한 것이다. 역사적 조사로서 이것의 많은 부분은 아직도 타당하고 그래서 더 나은 연구를 위한 근본적인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우리가 오늘날 본질적인 것으로 연구하는 것; 정주 형태, 기술, 사회, 경제적 역사와 인구 통계학에 관련된 언급은 실제적으로 없다. 미학적이고 종교적인 것도 소홀히 다루어졌다. 문화라는 용어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Kenyon에 의해 쓰여진 유명한 CAH에서도 중기 청동기 시대 연구는 강조점이 별로 다르지 않다.

이제 Kenyon과 Mazar는, 이들 이슈가 1960년대에는 제기되지 않았기 때문에 용서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는 그 자료가 유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고학자와 역사학자가 잘못된 질문을 물어 왔기 때문에 혹은 아주 유용한 자료의 전체 범위에 대해 집중할 수 있는 명확한 연구 계획을 장려하기 위해 부적절한 질문들을 누적시켜 왔기 때문에 그 자료는 쓸모가 없다. 물론, 정치적 역사를 향한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자들의 아주 배타적인 지향이 명백히 진술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용된 전형적인 방법들과 얻어진 결과들로부터 추정될 수는 있다. 그 두 가지 초점들은 ⑴층위학 혹은 주요 건축학적 단계와 분리되어 올바르게 발굴하는 방법에 대한 학습, 그리고 ⑵정치적 역사의 주요 에피소드를 묘사하는 성서 텍스트와 다른 텍스트를 그것들과 연관시키기 위한 도자기 연대, 지층의 절대 고정된 자료, 거의 파괴된 지층(layer) 현장 계획은 큰 이야기들(tells)에 집중하는데 특히, 성서 유적 현장을 확인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가장 명확한 확증이 목표이다. 즉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도자기와 물건들이 나오리라 기대할 수 있는 주요 건축물이 그것이다. 발표는 종종, 모든 층에서 추출된 깊은 sondage의 선호로 편협해지곤 한다. 비록 거의 인식되지 않고 있지만, 이러한 종류의 고고학의 주된 목표는 다음과 같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⑴주요 유적에서의 정치적 역사의 개요와 ⑵올바로 측정된 지역 도자기 연대,

발굴 현장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가사 지역에 노출되어 있다. 즉 개인 주거지, 창고, 산업 설비, 혹은 계단식(테라스) 단지, 정원, 그리고 다른 개방된 지역에 노출되어 있다. 물, 땅, 그 밖의 자연 자원의 사용을 밝혀 줄(무덤을 제외하고) 특징을 묘사하는데 실제로 관심이 없다. 작은 위성 마을, 야영지, 그리고 시골 오지는 거기에 대한 환경에 대한 관심과 종교적 조사 작업이 거의 수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시리아-팔레스틴과 성서 고고학자들의 초기 세대는 비교 층위 학과 도자기 연대 측정이라는 도구로 중동 지역 어디서나 대적할 수 없는 예리한 날을 갈아 왔다. 그러나 여기에서조차 제한된 목적들은 과거를 소급함으로 명확해진다. wheeler-kenyon의 층위학 방법은 정확한 위치를 분리할 만큼 경험적으로 지표층(soil layers)의 관찰, 기록에 기계적으로 집중했다.

그러나 거기엔 우리가 이제 유적 형성 과정이라 부르는 것, 우선 이들 퇴적층에서 형성된 자연적, 문화적 활동, 그래서 더 큰 맥락에서 그것들의 기능을 설명할 수 있는 활동에 대한 부적절한 인식이 있었다. 혹은 다시 말해, 팔레스틴의 평범한 도자기는 도자기 연대를 꽤 정확하게 집어내도록 하는 도자기의 유형화 된 발전 단계를 챠트화 할만큼 거의 분석되고(장식과 모양이) 분류되어졌다. 그러나 극히 작은 예를 제외하고서는 도자기는 우리의 역사, 기술, 미학, 국제 관계, 무역, 즉 문화와 문화 변화에 대한 지식에 공헌한다는 관점으로 연구되진 않았다. 결국 그것은 불충분한 문화 변화 자체의 모델들이다. 대부분은 환원주의자들이고 확산주의자들이다. 문화라는 용어는 ‘도자기 집합’이란 말과 항상 마찬가지 의미이다; 그리고 새로운 도자기 문화는 새로운 사람, 아마도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주요 민족운동과 외국 침입은(즉 역사적 사건) 고대 팔레스틴의 거의 모든 변화를 설명하는데 이용되어졌다.

토착적인 사회 경제적 요인들, 기술적 혁신, 혹은 다른 의미로 일반적인 지역 문화의 발전에 대해서는 거의 강조되지 않았다. 이전 세대의 이들 특징적인 강조에서 우리는 직업에 대한 명확한 패러다임을 볼 수 있다; 정치적 역사가 목적이지 사회경제적, 기술적, 참된 문화적 역사가 목적은 아니다.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은 층위학과 도자기 연대측정학의 숙달에 의해서 혹은 완벽한 현장 기술에 의해서는 그리 많이 발전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것의 인식론이 좀 더 정교해짐으로써 발전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시작이 이론을 우리가 해 왔던 것처럼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고학적 연구를 발전시키고 좌우할 수 있는 ‘발견 원칙’으로서 긍정적으로 보게 한다. 그러한 이론은 이해되어져야 하고 체계화되어야 하고, 명확히 집중되어야 하고 가능한 한 경험적으로 실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연구 계획이라고 자주 말함으로써 정말 우리가 의미하는 것이다.

미래에 ‘정치적 역사’의 대체 모델은 거대한 문헌 자료를 이용하여 이데올로기 밑으로 거대한 우연적인 대중적 사건을 넘어 거대한 시간의 휘두름을 넘어, 셀 수 없는 개인들의 일상 생활과 환경을 추구하는 사회, 경제적 역사를 쓰는 아날(annales)학파로부터 유래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필립 2세 시대의 지중해안과 지중해 세계’로 알려진 Fenand Braudel은 3단계 시스템을 제창했다. 위의 레벨은 ‘사건의 역사’이다. 급격하게 움직이는 역사는 피상적이다. 바로 밑 두 번째 단계는 ‘사회적 모임의 역사’와 훨씬 더 천천히 움직이는 그것들의 상호작용을 절충시킨다. 가장 밑의 단계는 모든 놓인 단계의 역사가 뿌리 내리고 있는 자연적 환경에 있는 하류층의 작은 그룹과 개인들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점차적으로 드러나고 수천년 동안 한결같을 수 있다. 아날학파의 도움이 되는 다른 작품은 E. LeRoy Ladurie의 ‘예스의 소작인’이다.

물론 고고학은 아날학파의 역사가에 의해 바뀔 수 있는 광범위 한 문헌을 포함하지 않는다. 또 그것이 잘 가공된 개인적인 역사로 써서도 안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고고학은 생태학적이고 환경(setting)에 집중한다; 그것은 평범한 개인의 일상생활을 반영하는 애매하고 인공적인 자료 투성이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오랜 기간에 걸친 문화적 변화에 대한 민감함 때문에 모든 학문 사이에서 독특하다. 그래서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이 이전에 생각할 수 없었다고 믿는 좋은 이유가 된다. 도구는 손에 있다. 왜냐하면 아주 다양한 학문적, 생태학적, 체계적인 접근 방법이 올바른 지향에 있어서 유망한 점을 이미 위에서 지적했기 때문에.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의 초점의 범위를 우리가 넓히는데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아주 바람직한 오늘날의 다른 목표, 즉 고고학 일반 분야와 인류학을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과 통합시키는 목표는 아직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이 목표가 아직 성취되지 않고, 또 진지하게 시도되지 않는 것은 고통스럽게도 명백하다. 고대 팔레스틴은 상당한 매력이 있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중추적인 지정학적 상황, 위대한 문명 발상지, 급격히 성장하는 데이터 베이스와 함께 중동의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그 지역에 훨씬 강하게 연관된 고고학적 연구의 오랜 역사, 성서의 땅으로서 엄청난 대중적 호소력(appeal), 아직도 인류학자와 사회역사학자들은 사례 연구로서, 특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잘 알려지지 않은 시리아와 비교하는 사례 연구로서만 전형적으로 팔레스틴을 무시하는 교차-문화적 비교를 추구하고 있다. 왜 그럴까?

부주의한(소홀한) 부분은 단순히 많은 인류학자들 사이에서 반성서적 경향을 지닌 세속주의자가 원인이다. 그 부분의 일부는 불행하게도 우리 자료의 질에 대한 의심이다. 그것의 많은 부분은 최근의 더 나은 작업을 소홀히 한 것처럼 과거의 불충분한 발굴에 기인한다. 그러나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의 고립이 대체로 우리의 잘못 때문임을 인정해야 한다. 최근까지도 우리는 지적, 학문적 사업으로써 미국 고고학과 인류학의 발전 역사에서 떨어뜨려 놓은 채, 성서학의 분과로서만 그 분야를 인식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아마추어적 위상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 왔고 또 전문화에 저항해 왔다. 이것은 우리 분야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고고학자들이 묻는 질문을 똑같이 묻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주요 잡지를 읽거나 출판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문가 모임이나, 다른 고고학적 인류학적 조직의 연례 회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근동 선사 고고학과 마찬가지로 신세계와 유럽 고고학이 수행해 왔던 대학 인류학과의 프로그램을 가르치거나 나누지도 않았다.

세계 고고학의 최근-현재의 이슈는 다음과 같다. ⑴복합적인 사회의 흥망성쇠 ⑵문화적 변화의 재구성에 있어서 이상주의자와 물질주의자의 패러다임에 있어서의 균형 ⑶고고학/인류학의 사회학적 역사 ⑷공간-시간 체계론, 인공물의 다양성, 문화적 유형, 행위의 구체적인 상호 관련 ⑸유적 형성 과정과 고고학적 기록의 성질 ⑹민족성에 있어서 고고학적 정체성. 덧붙이자면 신고고학의 몇 가지 이론적 공격은, 정착 유형, 생활 양식, 사회 구조, 인구 성장 같은 특정 질문들을 반성하게 한다. 시리아-팔레스틴의 냉정한(공평한) 조사 방법이나 일반적 고고학과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의 문학에서의 비교 인용 분석은 우리가 이를 핵심 이슈의 토론에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했다는 것과 이제야 그것을 깨닫기 시작했음을 보여줄 것이다. 소장 고고학자들은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을 주류로 만드는 과업에 참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 결과를 산출하기 위한 새로운 지향점을 발생시킬 것이다. 아직까지도 ‘혁명’은 완성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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