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성서고고학 운동의 붕괴
회상해보면, 고고학적 ‘혁명’이 Albright와 그의 추종자들이 단지 구체화하지 못함으로써 이리저리 상상되어졌다는 것은 명백하다. 한 세대 후 미국 성서학자의 주류는 Albright 같은, 더 나아가 대륙학자의 경향, 특별히 처음부터 미국스타일의 ‘성서고고학’이라는 의심스러움이 남아 있던 독일학파같은 복고(반동)적이고 실증적인 경향으로부터 탈피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성서고고학’의 사망(demise)은 성서 신학의 죽음에 대한 많은 토론과 일치한다는 것은 논의해 볼 만하다. 어떤 경우에는 성서 고고학이 좀 더 특징적이고 전문적인 세속 학문 용어인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으로 대치되어 불려져 왔다.
의미론적 혼돈의 결과 혹은 위협적인 아마추어와 성서학자의 감정적인 과민 반응의 많은 부분에 대해 처음으로 격렬한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고고학자들은 특별히 더 젊은 세대이다. 또한 열광적으로 ‘신고고학’을 주장해 온 가장 초기의 성서 고고학자도 포함해서 말이다. 상대적으로 쉬운 이행이 놀라운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아마도 지적, 이론적 혁명이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는 데 기인한다; 신고고학은 자유로운 연구와 보다 짜릿한 결과를 약속했기 때문에 유쾌할 수 있었다. 항상 실용적이었던 미국,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은 위기와 변화의 시기에 자신의 안정성의 많은 부분을 이 곳에 남겨 두었다.
1970년대와 80년대 ‘두 고고학의 투쟁’(Glock의 용어)에서 시리아-팔레스틴이 승리했다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 새로운 양상은 어느 곳에서나 명백하다; 유형적 제안에서, 중동의 거의 모든 계획에서도; 잘 나가는 잡지의 논문에서도; 국가적인 전문가 모임에서도, 그리고 연구의 끊겨진 가장자리가 보이는 몇몇 대학원 프로그램에서도 성서고고학의 오래된 옛 스타일에 대한 향수가 꽤 남아 있지만 사실상 미국에서는 아무도 더 이상 그러한 고고학을 할 수 없다. 근본주의자들조차도 말이다. 무엇이 발생했는지는 지난 10년간을 주의함으로써 잘 요약할 수 있다. 혹은 아직 아버지 시대의 의식이 남아 있더라도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 시대가 온다는 것을 주목함으로써 잘 정리될 수 있다. 그 분야를 지배하기 위해 출현한 그것은 다음과 같이 특징 지워진다. ⑴특수화(specialized) ⑵전문화(professional) ⑶세속화(secular)
2.추정되고 있는 전공(과목)으로서의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
성서학과 고고학 분야에서 성서적 고고학에 대한 논쟁은 끝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이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전공 학문이 되었다는 증거로 다루어질 수는 있다. 그 질문에 대해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전공 학문이 규범적으로 식별될 수 있는 아래의 기준을 제안할 것이다. 연구 분야는 이것을 포함할 때 전공과목으로 구성된다고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 ⑴연구되어진 독특한 현상의 분류와 과업에 적절한 자료. ⑵특정 방법과 표준이 파생되어진 타당한 이론에 부합하는 체계(body). ⑶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전문가적 학문적 자세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 그룹. ⑷직원을 교체할 만큼 충분한 교육, 훈련 프로그램. ⑸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인수해야 할 필수적인 재정 지원. ⑹단결된 정체성의 장려, 합작 계획의 촉진, 표준의 보증, 전공의 관심을 촉진시키는 전문적인 기구. ⑺결과의 유포와 발표를 위한 적절한 기구. ⑻자의식적으로 연결된 다른 전공들에 잘 훈련되어진 관계, 그리고 ⑼사상의 시장과 연구 기관에 겨룰 수 있는 전공이 되도록 해주는 적절한 대중 지원.
자세한 기록 없이도 현재 발전 단계에서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은 적어도 겸손함으로 이들 모든 표준을 만날 것이라고 강조된다. 사실상 이들 테스트 중 몇몇은 오래 전 ‘성서 고고학’때부터 있었고 나머지는 전공을 창조하려는 현재 세대의 성실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제 만나 지게 되었다. 그래서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은 적어도 신출내기이지만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전공 분야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측은하게도 조그맣게 남게 되고, 미래는 결코 세속적이지 않다고 하는 반면에 성서 고고학은 학문적 관심이 아니라도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후자는 대중적이거나 진지하거나 전공 상호간의 연구 즉 상당수 전공들 사이의 대화로서 더 잘 상상되어진다. 그러나 전공 분야의 문제는 전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몇몇 학자들은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이 성서학 분과 혹은 특별히 성서 고고학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크로스,1973). 다른 학자들은 두 유형의 고고학이 전적으로 전공 학과의 지위를 획득해 왔거나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3.전공 학문 사이의 대화 가능성
최근의 논쟁에서 종종 간과되는 근본적인 물음은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이 분리된 전공과목이 되거나 되어야 하는지 혹은 아직도 그것의 부모 전공인 ANE와 성서학에 관련되어 있어야 하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그러한 질문은 오늘날 고고학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드러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빈곤한 논쟁을 영속화시킬 뿐이다. 잘못된 개념들이 몇 가지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장 단순한 것은 성서 고고학의 이론과 목적이 성서나 성서의 땅을 단순히 설명하려는 것이다. 몇몇 학자들의 논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것들은 이렇다; 고고학은 단순히 역사의 보완이다, 고고학자들은 그들의 작업에 필요한 도구에 숙달됨으로써 인문과학과는 떨어져 있는 단순한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 혹은 전문가주의는 전공 학과에서 비난받아야 한다는 등. 학문으로서의 고고학에 대한 심각한 반대가 성서 역사가들로부터 배척된다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북서 셈족 히브리어 금석 학자(ephigrapher), 앗시리아 연구가, 텍스트 연구생, 그들은 그들 자신을 고도로 특화 시켰지만 주로 문화적 유물을 산출하는 고고학에 가치를 두었다. 이들 학자들은 동등하게 타당한 역사적 자료가 물질 문명의 유물에서 거의 유래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오늘날 고고학이 인문과학에 가치 있고 독특한 공헌을 할 수 있는 지점이다.
실제로 이들 모두와 학문으로서의 고고학에 대한 다른 반대들은 1970년대초 신고고학의 원초적 혹평을 상기함으로써 쉽게 제거된다. 아른 학문과 격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은 자율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ANE나 성서학에 대한 배타적 의존에서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그것의 내적 역동성에 따라 일반 고고학의 한 분과로서 발전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오늘날 모든 고고학의 학문 상호간의 관련이라는 특성을 강조해 왔다. 물론 이 대화의 파트너로 아직 ANE와 성서학이라는 부모 학문도 포함된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과학의 많은 분야도 역시 포함한다. 특히 인류학과 점증적으로 자연과학 분야도.
그 의도는 학문을 편협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 넓히려는 것이다; 성서학과의 대화를 단절하려는 것이 아니라 장려하려는 것이다. 새롭고 건실한 기초에서 고고학과 함께 이것은 이제 동등한 파트너가 되었다. 불행히도, 우리가 예상했던 것처럼 격차가 허용되는 특수화의 정도와 신선한 관점과 함께 독립선언이 과거 10여년간 고고학에서 일어난 반면 새로운 대화는 거의 시작되지 않았다.
이 점에서 다른 학문이 발전하는 방식을 관찰하는 것은 적절하다. 즉 어떻게 그들이 그들 자신을 스스로 재형성하고 연결된 다른 학문과 새로운 제휴 형태를 재형성했는지 관찰하는 것. 여기 토마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라는 고전적 작품은 가장 교훈적이다. 물론 쿤이 언급하는 점은 자연과학이지만 그의 논쟁은 사회과학에 적용할 때도 꽤 그럴싸하다. 쿤은 시대별로 혁명이 내적, 외적 변화에 기인하는 기본적인 이론적 지향이 뒤집어진 결과로서 전공 학문에서 유형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실용적인 관심의 결과로서 발생한다는 것을 밝혔다. 규범 과학의 시기 이후 소장 전문가들의 주류가 과학을 수행하는 더 나은 방법을 발견하는 동안 성립되어 있는 관점이 도전 받는 과정으로 경쟁하는 범주, 패러다임 사이에서 투쟁이 연속적으로 계속되었다. 그러나 결코 전적으로 교체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주류의 공감대가 추구될 때 규범 과학의 새로운 단계는 머지않아 성취되어져 왔다고 이야기되어지고 그 과정은 그 자체로 반복되어질 것이다.
쿤의 유추(analogy)에 대하여 우리는 1970-1985년 시기에 증언된 성서 고고학과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에서의 참된 혁명을 논할 수 있다. 더군다나 포괄적인 지적 기반 작업(즉 이론)의 정초는 아니다. 아직 뛰어난 결과를 가져 올 주장을 정당화하는 증거들이 아직 많이 발표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신고고학이 고고학을 수행하는 옳은 방법, 어떤 고고학적 해석에 대한 최종적인 진실을 처음부터 밝혀 내지는 않았다. 세대의 투쟁에 의해서 뒤따르는 쿤의 ‘패러다임의 이동’이란 것이 일어났다. 이 발전은 1950년대-1960년대의 층위학(stratigraphic)의 혁명에 뒤이어,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의 ‘4번째 혁명’을 구성한다고 다른 곳에서 논쟁되었다(데버 1988).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새로운 연구 과정으로 산출된 새로운 자료로 논쟁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길 원할 수 있을 때에야 우리는 ‘규범 과학(normal science)’의 시기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항상 ‘혁명’에 뒤이은 이론적 정식(formulation)들 때문에 그것은 역시 여기서 시도하고자 했던 반성과 비평적 평가를 위한 시간이 된다.
우리는 이제 ‘혁명 이후’고고학과 다른 학문 사이의 관계와 관련해서 위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이슈들로 되돌라 갈 것이다. 그 이슈는 종종 이런 양식으로 제기되어졌다; 아직도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이 ANE, 성서 역사나 인류학의 한 분과로 남아 있는가?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이분법이다. 오늘날 고고학의 어떠한 학문의 분과도 아니다. 고고학은 어떤 학문의 보조 과목이 아니라 전공 학문 그 자체이다. 제시된 2개의 학문 중 선택하라면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은 최근, 인류학 쪽에 좀 더 밀접해져 왔다. 이것은 많은 이로움 때문에 관련되어진 것이다. 그것은 ‘미국 고고학은 인류학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학문적인 분야(scene)에 대해서보다 자주 관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고고학은 우리가 주목한대로 그 성격에 있어서 상호 학문적이다. 그리고 고고학은 그런 사실에서부터 자신의 설득력과 타당성을 끌어내어야 한다. 이것은 지적인 이슈보다는 학문적인 편의성의 문제로 좀 더 다루어져야 한다.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이 최근에 성취한 가장 인상적이고 유익한 것은 오늘날의 그 학문이 근동 혹은 중동에서 종교학, 역사, 고전, 인류학 분야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북미 고고학의 몇몇 학과에서도 후자의 발전-nonareal(비지역)의 확립 모두를 포함하는 고고학, 독립적인 인류학, 근동학 혹은 고전적인 학과-은 고고학이 오늘날 생존에 적합한 학문적인 전공 과목이 되었음을 명백히 가르친다.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은 아직도 많은 지엽적 문제(context) 때문에 즉 부차적 문제 때문에 ANE와 성서학을 끌어들이지만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은 점점 더 분석 과정을 위해 자연과학을 추구하고 그것의 이론적 지향을 위해 인류학과 다른 사회과학을 추구한다. 역사, 인류학 혹은 과학이라는 꼬리표로 고고학을 한정시키려하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는 고고학의 여러 국면의 다양성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고고학은(인류학처럼) 많은 다른 학문으로부터 유익을 얻고 또 공헌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