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4월 미국 선교부로 보낸 릴리어스 언더우드(Lilias Underwood)의 편지를 보면 “사실은 선교사 모두가 전도하기를 원합니다. 가르치는 일은 이제 지겹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PHS,1896년 4월 22일)라고 말한다. 실제로 교육 사업에 관여하던 선교사들은 교인들을 훈련시키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세속 교육에는 한 마음으로 반대하였다(앞의 책, 111)
이렇게 편지에 나타난 것처럼 영혼 구원에 우선성을 두고 교육 사업을 2차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단지 언더우드만이 아니라 다니엘 기포드, 메리 기포드, 수단 도티, 헬렌 스트롱, 프레드릭 밀러 선교사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교육 사업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필요성을 개진하고 있었다고 한다(앞의 책 각주 인용, 111).
그렇다고 자신을 전 천년주의자라고 공공연히 말했던 원두우 선교사가 교육과 의료 사역의 필요성을 완강하게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교육과 의료 사역은 복음 전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확실한 수단으로서 임시 방편의 해결책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앞의 책, 94).
언더우드(Underwood)는 전 천년주의자였던 증조부 원두우 선교사가 지녔던 선교의 방향은 북장로교 선교부의 선교 정책에 부합된 것이었음을 밝힌다.
첫째, 전 천년주의자 선교사는 타락한 세상의 기관을 적법한 “기독교의 대변자”로 인정하기를 거부하였고, 둘째, 선교사는 선교 사역에 있어서 “사회복음”적 접근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자주 주창하는 기독교는 인도적 봉사 기관이라는 생각에 반대하였고 주한 장로교 선교기관의 핵심인물들이 본국 선교부와 서신 연락을 통해 보수적이고 전 천년주의적인 선교 방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근대주의 신학과 세속 교육에 치우친 선교 후보생들은 주한 선교부에서 배제되었다.
요약하면 이 시기의 장로교 선교는 정석적인 기관 사역에서 벗어나 있었고 자신들의 전 천년주의적이고 반근대주의적인 신학 노선을 명확하게 밝히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여러 기관에 대한 장로교 선교사들의 태도 변화는 단순히 선교 개념의 표명으로만 보아서는 안되며 당시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과 상황과 연계해서 생각해야 한다.
만약 선교사들이 복음 전도에 대하여 한국인들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 그들은 세속 교육과 영여 교육에 대한 한국인의 요구를 그토록 강하게 거부하지 못했을 것이며…기독교에 대한 요구와 반응이 엄청났던 한국 북부 지방…한국 북부 지방이 기독교 복음에 대해 보여준 수용적인 태도로 인해 복음에 대한 반응이 별로였던 남부 지방에서도 선교사들이 교육 사업에서 물러나게 만든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앞의 책, 111-112)
개화기 조선 선교사들의 선교 정책은 비단 종말론에 의해서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이 직면하고 있던 정치적인 상황, 그리고 서북 지방 사람들의 복음에 대한 놀라운 반응은 선교의 정책과 방향에 영향을 끼친 요인이었다. 하지만 개화기 조선에 복음을 전해주었던 대부분의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였들 가운데 다수의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던 세대주의 종말론은 조선의 선교 정책의 방향 그리고 내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들의 세대주의 종말론은 그들의 삶과 선교 정책에 영향을 끼쳤고 조선의 교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류대영은 조선 개화기에 미국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던 세대주의 종말론이 선교 정책과 함께 맞물려 조선 정부와 식민 지배하에 있던 조선인들과 일본 정부에 대한 태도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음을 설명한다.
조선 개화기에 미국으로부터 전래된 개신교는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종교였다…그런데 개항 이후 시간이 갈수록, 민족사의 비극적 전개와 맞물려 그 “환경”은 기독교의 수용과 전파에 이로운 쪽으로 전개되어 갔다. 그런 상황 속에서 수용된 기독교는 개종자 개인들에게 “구원”을 제공하는데 머물렀다. 러일 전쟁에서 경술국치에 이르는 기간 동안 개종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구원받은 개개인은 늘었지만 그것이 민족의 “구조적” 구원을 위한 대대적인 노력으로 연결되지 못하였다.
미국의 개신교는 생각보다 훨씬 더 정치에 순종적인 종교였고…미국 선교사는 미국의 국가적 이해와 분리되어 있었고, 이들은 미국 정부의 힘으로부터 최소한의 보호 밖에 받지 못하는 입장에 있었다. 이런 정황에서 미국 선교사들은 스스로를 비정치화시킴으로써 개인에게 구원을 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그들은 지배적 힘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거나 필요하면 순종하는 선택을 거듭했다…그들은 조선 기독교인들에게도 같은 태도를 요구했다(류대영 2013, 444-445).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종말론은 한 사람이 삶의 전체, 즉 개인과 시대를 해석하고 행동하는 관점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런 점에서 개화기 조선에 내한한 선교사들이 전했던 복음과 종말론은 한국 교회와 선교지민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칠수 밖에 없었다. 간략하게나마 개화기 조선 선교사들이 가졌던 종말론과 이를 통한 선교 정책의 변화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다음 장에서는 개화기 조선에 내한한 선교사들이 전해준 종말론의 영향을 받은 한국 교회의 종말론과 세대주의 종말론 이 한국 선교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다루어 보고자 한다.
제3장 종말론과 선교
종말론은 지금도 선교의 방향과 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다수의 미국 선교사가 가지고 있던 종말론인 세대주의 전 천년설은 한국 기독교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류대영은 제국주의 침략 앞에 조선이 망해가는 상황에서 조선이 가장 필요한 것은 독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선교사들은 자신이 섬기는 조선인들의 가장 절박한 필요에는 무관심하고 조선인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었을지 질문한다(류대영 2013, 450).이러한 모순적인 선교 상황 역시 미국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던 종말론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종말론은 개인의 삶 전반으로부터 한 단체의 정책과 방향까지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렇다면 미국 선교사들이 전해준 세대주의 종말론을 이해하기 위하여 세대주의 종말론인 세대주의 전 천년설에 대하여 알아보고, 세대주의 전 천년설이 한국 선교에 끼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전 천년설과 세대주의 그리고 세대주의 전 천년설
그루뎀(Grudem)은 millenium이란 단어는 천 년을 의미하며, “어떤 자들은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는 계20장 4-5절에 나타난 용어라고 설명한다(Grudem 1997, 413).
그는 계20장 2-3절에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는 말씀 안에서 천년 왕국에 대한 세 가지 입장을 가진다고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앞의 책, 413)
그루뎀(Grudem) 역시 전 천년설을 역사적 전 천년설과 세대주의 전 천년설로 나누며, 전 천년설은 현재 교회 시대는 마지막 때의 대환난과 고난의 때까지 계속될 것이며, 교회 시대 말엽의 대환난 이후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이 때 죽었던 자들이 일어나 그들의 육신은 영혼과 연합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왕국을 다스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어떤 전 천년설 학자는 문자적으로 천년을 주장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긴 시간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하기도 한다(앞의 책, 416).
세대주의 전 천년설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7단계를 구분한다. 세대주의 전 천년설은 교회시대는 그리스도께서 생각지 않은 때에 갑자기 몰래 재림하시고 신자를 부르실 때까지 계속되다가 이 땅에서 들림을 받은 신자들과 함께 그리스도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시고 이 일 후에는 7년 대환난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한다. 7년 동안 그리스도의 재림에 선행되어 예언된 많은 표적들이 임하고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고 의지하는 유대인들의 수가 차게 될 것이며, 환난 중에 전도가 활발해질 것이며 특히 거듭난 유대인들이 활발하게 전도활동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환난 이후에 그리스도는 성도들과 함께 다시 재림하고 천 년 동안 이 땅에서 왕으로서 통치하며, 천 년이 지나면 다시 배도가 일어나고 그 때 사단과 그의 세력은 참패를 당하게 되며 마침내 불신자들의 부활과 마지막 심판이 있고 그리고 나서 영원한 나라가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들은 대체로 교회와 이스라엘을 분명하게 구분하고자 하는 세대주의자들에 의하여 주장되고 교회는 유대인들의 대대적인 회개 이전에 이미 들리워 올라갈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환난 이전 전 천년설은 그와 같은 구분을 가능하게 해 준다. 그리고 환난 이전 전 천년설은 가능한 한 문자적으로 성경적인 예언들을 해석하기를 고집한다. 특히 이스라엘에 관한 구약의 예언에 확실하게 적용한다. 구약의 이스라엘에 내려질 하나님의 복에 관한 예언들은 미래에 유대인들에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예언들은 교회를 통해 성취되었다고 영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이 입장의 매력적인 특징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아무 때나 임할 수 있기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라고 하신 말씀의 의도를 반영한다(앞의 책, 419-420).
이필찬은 세대주의 신학은 이미 죽었다고 확언할 수 있기에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목회 현장과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서는 말초 신경과 감정을 자극하는 세대주의적 감성이 더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이필찬 2014, 9).
이필찬은 라이리(Charies C. Ryrie)가 이해하는 세대주의를 아래와 같이 요약한다.
세대주의의 주요 특징은 각각의 세대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통치 관계가 바뀌며, 따라서 인간의 책임도 세대마다 바뀌게 되며, 그에 합당한 계시를 준다는 점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를 구분하는 데 시험, 실패, 심판 등은 2차적 특징으로 필수조건은 아니다. 세대주의자는 반드시 전 천년주의자이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즉 전 천년주의자 중에는 세대주의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세대주의의 필수 조건은 첫째, 세대주의자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분하고 둘째, 영적 또는 알레고리적 해석이 아니라, 일관된 문자적 해석을 지지하며, 셋째, 세대주의에게 구원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한 부분일 뿐이고,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엡1:6,12,14).
따라서 세대주의에게 성경은 인간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다. 그리고 문자적 해석을 지지하는 이유로는 첫째, 철학적으로 언어 자체의 목적인 문자적 해석을 요구하며, 성경도 언어의 특별한 사용으로 간주될 수 없기 때문이며 둘째, 성경적으로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이 문자적으로 모두 성취되었기 때문이며 셋째, 논리적으로 만약 문자적 해석법을 사용하지 앟는다면 모든 객관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일관된 문자적 해석의 중요성…일관된 문자적 해석의 결과…세대주의는 일관된 문자적 해석을 종말론에 적용하며 따라서 구약의 예언이 천년왕국 시대에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해석한다. 세대주의는 교회와 이스라엘을 엄격하게 구분하기 때문에 천년 왕국에서 성취된 구약의 예언은 교회가 아닌 이스라엘에 해당된다고 해석한다. 따라서 교회는 환난이 시작되기 전 지상으로부터 들려 올려질 것이다(이필찬 2014, 12-14).
마스덴(George M. Marsden)은 전 천년주의 운동의 기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데이비드 보쉬(David Bosch)는 그의 글을 인용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전 천년주의자 운동은 19세기 부흥주의, 복음주의, 경건주의, 미국주의와 다양한 정통주의 전통들의 복잡하고 얽힌 뿌리로부터 나왔다”(Marsden, George M. 1980, 201: 보쉬 2017, 500에서 재인용).
보쉬(Bosch)는 19세기 미국의 다양한 전통들로 얽힌 복잡한 뿌리로부터 나온 전 천년주의 운동은 다양한 아종을 낳았다고 말한다.
재림주의(Advetism), 성결 운동, 오순절 운동, 근본주의, 보수 복음주의이며, 예외 없이 이 모든 그룹들은 세계 선교 사역에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말한다. 서로 간에 상당히 다른 점도 있지만 여러 공통점들이 있다고 말한다. 전 천년주의 진영에서의 공동주제는 그리스도의 재림이었고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강조를 두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한다. 제칠일 안식교의 원조인 윌리엄 밀러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 왕국의 시작을 예견하고 독일인 중국 선교사 칼 구즐라프와 중국 내지 선교회 허드슨 테일러의 종말론적 기대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Bosch 2017, 501).
세대주의 전 천년설과 선교의 관계를 논하기 위한 선행 작업으로 천년주의, 세대주의 그리고 세대주의 전 천년설에 대하여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그렇다면 세대주의 전 천년설은 선교와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