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6-07 10:21
세대주의 종말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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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126  

-남경우-

제1장 총론

종말론은 선교에 영향을 끼친다. 여러 종말론의 입장 가운데 특히 세대주의 종말론은 한국 선교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별히 조선 개화기에 복음을 전했던 다수의 미국 선교사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개화기 조선의 선교사는 대략적으로 6개교단으로부터 파송되었는데 이들중 대부분의 선교사는 감리교와 장로교 선교사였다.

미국 남장로 교, 미국 북장로 교 그리고 미국 남감리교, 미국 북감리교, 호주장로교, 그리고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 중에 약 80%의 선교사는 미국에서 파송되었다. 본 논문은 개화기 미국 선교사의 종말론이 한국 선교에 끼쳤던 영향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하여, 이후 그들이 가졌던 세대주의적 종말론이 한국 선교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류대영은 제국주의 침략 앞에 망해가는 상황에서 조선인들이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조선의 독립이었는데, 미국 선교사는 이일에 대하여 관심을 표명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조선인들을 사랑할 수있었는지의 문을 던진다. 그는 이러한 선교사의 태도가 우리의 개신교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두고두고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류대영 2013, 450).

본 논문은 류대영이 던진 질문과 관련하여 왜 미국 선교사는 조선인들의 가장 급박한 필요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는지 부분적인 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개화기 조선인들의 가장 긴급한 필요를 뒤로 하고 영혼구원을 위한 복음 사역에 치중했던 이유 중 하나는 미국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었던 종말론에 대한 신학적 확신 때문이었다.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확신했던 다수의 미국 선교사는 임박한 종말의식 속에서 조선인의 실제적인 필요보다는 영혼의 구원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대주의 종말론은 아직도 미국의 복음주의 그룹안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에 미국과 한국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세대주의 종말론자 홀 린세이와 같은 사람의 책을 통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현대에 일어난 사건을 세대주의에 근거하여 해석하였다. 홀린 세 이의 해석은 미국 중심의 반공 이데올로기, 근본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는 WCC를 거짓 예언자로 보고 곡과 마곡을 러시아로, 이만만을 중공 군대로 보고 일곱인을 중동 전쟁으로 보면서 여섯째 인을 핵 전쟁의 시작으로 보고, EU 당시에는 ECC를 적그리스도로 보았다.

이러한 세대주의 종말론은 성경의 예언을 문 자적으로 보기에 혈통적 이스라엘에 집착한다. 이러한 관점은 약 30, 40년 전의 미국 복음주의에서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미국 정치의 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 다수는 지금도 여전히 무모 할 정도로 친이스라엘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이들의 생각은 다수의 한국 지도자와 성도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별히 세대주의 종말론은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 성도들뿐 아니라, 선교사와 선교사 후보생에게도 큰 영 향을 끼쳤다. 임박한 종말론이 주는 막연한 두려움, 주님의 재림을 앞당길 수 있다는 선동적인 가르침이 불어넣어준 열정은 때로는 지식 없는 열정을 낳았고, 미지근한 교회 공동체를 향한 비판과 함께 분열을 일으키는 동시에 많은 젊은이들의 선교 동력을 불어 일으키고 있다.

필자는 이 소고를 통해 세대주의 종말론이 한국 교회와 선교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 교회와 선교가 이전보다 복음의 가르침에 부합된 선교로의 회심을 경험하길 바란다. 지난 시간 동안 선배들의 귀한 헌신과 섬김으로 열매 맺은 한국 선교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동시에 진지한 성찰을 하는데 조그만 동력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 기독교는 경제적인 성장에 발 맞추어 양적인 성장을 거듭해 오면서 전례 없는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이러한 ‘양적 성장’이라는 절대 가치 앞에서 우리는 성찰 할 여유조차 사치인 양, 브레이크 없는 열차와 같이 질 주해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와 교회는 코비드-19를 맞이했고, 폭발적인 성장 이면에 감추어져 있던 어둡고 아픈 상처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처들 앞에 변화와 개혁의 필요는 느끼지만 무엇을 어떻게 우선적으로 점검하고 변화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와중에 한국 기독교는 성경을 통한 면밀한 신학적인 성찰과 동기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양적인 성장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달려오는 가운데 우리가 놓쳤던 본질에 대해 살펴보고 우리의 실수를 되짚어 보 아야 한다.

현재 한국 기독교는 사회 갈등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선교 전방에 많은 선교사를 보냈지 만 선교 후방인 교회는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메시지와 메신저의 불연속성 그리고 탈육신적인 성도들의 태도와 모습, 상호 협력과 어우러짐 대신 혐오와 배제를 조장하는 기관으로 오히려 사회의 걱정거리가 되어 버린 듯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 교회와 선교계는 지난 날의 영광에 집착하지 않고 지금에라도 겸 손하게 우리의 선교를 돌아보아야 한다. 행여 우리도 성경적인 본질보다 실용적인 방법에 치중하며 속도와 배가 그리고 외적인 열매에 치중했던 부분은 없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쉬운 말 성경은 잠언 19장 2절에서 “지식 없는 열심은 바람직하지 않고, 너무 서두르면 잘못을 범하기 쉽다”고 경고한다. 이런 면에서 세대주의 종말론에 의해 고취된 선교적 열정 뒤에 감추어진 우리의 무지를 인 정하고 성경을 통한 성찰을 면밀히 해야 할 것이다. 건강한 선교는 건강한 종말론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 소고가 우리의 선교를 더욱 성경적인 지식의 토대 위에 세우고, 한국 교회가 이전보다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기를 바란다.

필자는 제2장에서 조선 개화기 미국 선교사들이 가졌던 종말론과 선교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다수의 미국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던 종말론이 개화기 조 선의 선교 정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그들의 종말론은 교회와 선교와 선교지민의 삶에 어떤 영 향을 끼치는지를 고찰할 것이다.

제3장에서는 다수의 미국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던 세대주의 종말론이 무엇인지 그리고 세대주의 종말론이 한국 선교에 끼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우리 한국 교회와 단체의 선교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려고 한다.

제 4장 결론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세대주의 종말론을 극복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서 성경에 부합된 선교를 위하여 몇몇 학자들의 생각을 인용하며,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의 종말론과 선교를 제안하고자 한다.

제2장 조선 개화기 미국 선교사의 종말론과 선교

필자는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면서 인도네시아의 약 700종족 가운데 복음을 받아들인 12개의 기독교 종족들의 삶을 표면적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12개의 그리스도인 종족의 삶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선교사와 그들이 전한 복음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필자의 지인인 인도네시아 자생 선교 단체의 대표는 서구 선교사들이 자신들에게 전한 복음은 지금 이 땅에 임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이 없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서구 선교사들이 가르친 천국은 죽어서 가는 장소의 개념으로만 전해졌고, 이로 인하여 복음을 듣고 받아들였던 인도네시아의 여러 기독교 종족은 선교사들과 더불어 선교지민의 현실의 필요에 대하여 무관심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 기독교가 이 땅에서 책임 있는 삶을 감당하지 못하는 기독교가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고 말하였다.

이처럼 한국에 최초로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들인 미국 선교사와 그들이 전한 복음, 특히 천국에 대한 가르침, 즉 세대주의 종말론은 한국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조선 개화기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던 종말

류대영은 미국은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 중산층 기독교인들은 ‘후 천년주의자’에 가까웠고 ‘전 천년주의자’는 적어도 수적인 면에서 소수에 불과했다고 말했다(류대영 2001, 38).

박응규(UngKyu, Pak)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대각성 운동으로 후 천년주의 영향을 받아오던 미국은 남북 전쟁 이후에 전 천년주의의 부흥을 경험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하면서 남북 전쟁 이후에 상황은 더욱 악화되면서 후 천년주의에 대한 신뢰도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Pak 1998, 81-82).

류대영은 개화기 조선 시대에 내한한 초기 선교사들이 무디의 영향을 받은 학생 자원 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 이후부터 약자로 SVM으로 표기)에 집중하는데, 그 이유는 SVM의 동력을 미국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유행했던 “전 천년설적 세계관”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실증적인 자료를 통해 1906년부터 1909년까지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 가운데 거의 50% 이상이 SVM 운동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 온 선교사였음을 밝힌다 (류대영 2001, 53). 그는 베버(T. Weber)의 말을 인용하여 아래와 같이 말한다.

“전 천년주의자들은 도래한 세상의 종말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해외 선교에 적극적인 것은 당연하다”(Weber, 1979, 67: 류대영 2001, 38에서 재인용).

이필찬은 이러한 종말론적 위기감에 의해 SVM에 속한 선교사들이 ‘세계의 운명에 대한 미국의 역할’이라는 전통적인 믿음과 연결하여 곧 다가올 세상의 종말 이전에 세계를 구원하자는 사명감으로 고취되었다고 말한다(이필찬 2007, 553).

이러한 세대주의 종말론이 주는 위기감과 두려움은 세대주의 종말론의 대환난 시대와 예기치 않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은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이 19,20세기에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 크게 성행했으며 이 입장은 그리스도가 천년 왕국 이전에 재림하고, 이후 대환난 시대가 도래하며 예수님은 교회 시대에 생각하지 않은 때에 갑자기 몰래 재 림하실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Grudem 1997, 419-420).

류대영의 실제적인 조사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바, 조선 개화기 다수의 선교사들은 세대주의 전 천년설을 확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이 미국 복음주의 내에서 일어난 종말론의 관점에 대한 변화와 더불어, 북장로교 선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SVM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 외에도 다수의 선교사들은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의 영향 아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개화기 당시 선교사인 호레이스 언더우드(Horace Underwood, 이후 증손녀 엘리자베스 언더우드와 구분하기 위하여 ‘선교사 원두우’로 표기한다)의 증손녀인 엘리자베스 언더우드(Elizabeth Underwood)는 1890년대에 접어 들어 마펫(마포삼열, Samuel A. maoffet, 1634-1939)선교사가 입국하면서 주한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한국 선교는 기관 사역에서 복음 전파 사역과 전 천년주의 신학으로 선교의 방향을 과감하게 전환하였다고 말한다(Underwood 2017, 106-107).

언더우드(Underwood)는 지구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 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세대주의 종말론에 대한 믿음은 미국 선교사로 하여금 다른 그 어떤 것보다 복음 전도 사역을 최우선 과제로 삼게 하였다고 말했다(Underwood 2017, 391).

이와 같이 개화기 조선 다수의 선교사들은 세대주의 전 천년설의 영향 아래 있었다.

조선 개화기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던 세대주의 종말론과 선교 정책의 상관

개화기 조선 다수의 선교사들이 세대주의 종말론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언더우드(Underwood)는 개화기 모든 선교사가 세대주의 전 천년설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며 특히 알렌 선교사의 신학적 성향은 그의 글에 공개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그의 활동과 발언을 살펴볼 때 알렌의 생각은 후 천년설적인 사상과 부합했다고 말하기도 한다(앞의 책, 92-93).

알렌은 선한 사역을 하다 보면 복음 전파의 기회를 얻게 되고 상류층에서 시작하여 하류층으로 내려오는 한국 사회의 변혁이 가능하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1886년 2월 알렌이 미국북장로교 선교부로 보낸 편지를 보냈다. 그 내용은 “미약하게 개종 사업을 추진하기보다는 근대 문명을 소개하는 여러 기관을 설립하여 조선 정부를 설득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알렌 자신의 선교 철학을 피력한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알렌이 복음 전도 사역에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조선의 정부 기관에 장로교 선교사들의 참여를 지지한 이유는 후 천년설에 근거한 신학적 전제뿐 아니라, 알렌이 조선과 서구의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앞의 책, 93).

이렇게 알렌과 같이 후 천년주의 입장을 가졌던 미국의 종말론의 대세가 전 천년주의로 바뀌고 있었음에도 알렌과 같이 후 천년주의를 지지하는 선교사도 있었다. 하지만 다수의 선교사들은 미국의 대세적인 종말론의 흐름에 영향을 받고 있었고, 특별히 미국 북 장로교의 전 천년주의적인 공식적인 입장은 미국 북장로교에서 온 선교사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우리의 행동과 무관할 수 없는 것처럼, 개화기 조선 시대에 파송된 선교사들 역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종말론은 그들의 선교 정책과 방향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세대주의 전 천년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성경에도 언급되지 않은 “7년 동안의” 대환난 이전에 일어날 성도의 휴거와 임박한 종말론을 믿고 가르치기에 세상에 대하여는 의례 소극적이고 다분히 이원론적인 삶의 태도를 지향하게 한다. 세대주의 종말론이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심대하다면 선교사들의 선교 정책과 방향에 미치는 영향 또한 동일하다.

언더우드(Underwood)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가 천년주의 종말론을 공식적인 입장으로 취함으로써 전체적인 사역의 기조를 기관 사역에서 복음 전파 사역으로 전환한 것과 관련하여 미국의 북장로교와 선교사들의 선교 정책의 변화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원두우 선교사의 초기 선교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으로서 원두우 선교사처럼 전 천년주의적 생각을 가진 선교사들이 입국하고…선교사들은 1890년에 일어난 일련의 정치적 사건, 특히 일본으로부터 근대화와 세속적 이념이 유입될 것을 예고하는 사건과 서북 지역 사람들이 복음 전도에 대해 보여준 “놀라운” 반응을 목격하였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몇몇 선교사들만 시도하다가 이제는 북장로교 선교사 전체가 복음 전파 노력을 더 기울여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선교 사역 실제와 선교 정책 면에서 주한 선교부의 복음 전도 정책 채택은 한국인들이 끊임없이 요구하던 근대적 교육과 교육 기관의 도입을 거부하는 것과 같았다(앞의 책, 106-107).

이와 같이 미국 북장로교의 전 천년주의 종말론은 다수의 한국인들이 소망했던 근대적 교육과 교육 기관의 도입에 대하여 소극적인 태도를 가지게 했다. 선교사의 종말론과 선교 정책의 상관성은 원두우 선교사의 부인인 릴리어스 언더우드(Lilias Underwood)가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 총무 엘린우드 박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비록 자신은 영어와 고등 교육 모두를 추진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다른 선교사들은 “학교를 세워 한국인을 불러 모아 그들을 구원시키려는 방안에 부정적”이라고 보고하였다. 특히 기독학교로 설립된 곳의 교육 사업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선교사들은 한 명씩 차례로 선교부 총무 엘린우드에게 자신들의 교육 사업을 대체할 사람을 보내주어 자신들은 전도 사역에 전념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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